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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민 칼럼] 조력사망, 이제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기자명 윤경민 보도전문위원 헬로우 TV 뉴스

http://news.lghellovision.net/news/articleView.html?idxno=482498


지난해 말 하반신 마비 환자가 조력사망(Assisted Suicide)을 허락해 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뇌척수염으로 하반신을 못움직이고 사지 통증의 고통에 시달리던 이명식 씨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은 죽음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씨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한국인 120명이 스위스로 건너가 생을 마감했다. 조력사망이 합법화된 곳을 찾아갔던 것이다.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뉴질랜드는 일찌감치 조력사망을 합법화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2021년 한 해에만 안락사로 7,666명이 사망했다. 네덜란드 한해 사망자의 4.5%에 해당하는 수치다. 약 90%가 암, 파킨슨병, 루게릭병을 앓는 고령자였다.

그런데 조력사망이 오래전 허용된 스위스에서 최근 조력사망 캡슐을 이용한 자살 사건이 발생하자 스위스 당국이 기기를 판매하고 운영한 사람들을 체포했다. 캡슐에 들어가 버튼을 누르면 질소가 뿜어져 나와 5분 안에 사망에 이르게 한다. 스위스 정부는 안전 관련 법률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며 사용과 판매가 승인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조력사망은 불법이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둘러싸고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안규백 의원이 2년 전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했지만 천주교와 의사협회 등의 반대로 논의가 중단됐다. 실제 법제화까지는 요원해 보인다. 

조력사망을 찬성하는 쪽은 주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강조한다. 환자가 자신의 삶과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는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말기 환자가 겪는 극심한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조력사망을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나아가 환자가 존엄성을 유지하며 인간다운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환자의 장기적인 치료와 간병으로 인한 가족의 경제적, 정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찬성 이유로 내세운다.

반면, 조력사망을 반대하는 쪽은 '생명 경시 풍조'를 우려한다. 조력사망을 허용하면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될 수 있으며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조력사망 제도가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가족에 대한 부담이나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환자가 원치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조력사망 대신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서비스의 확충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환자가 고통 없이 자연스럽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종교와 윤리적 관점에서 생명을 인위적으로 종결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도 있다.

자기 결정권이냐 생명경시 풍조냐. 이분법으로 이 사안을 바라본다면 결론을 내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이 논의가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줄이고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악용되거나 남발되는 등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방책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 시행한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생명 경시라는 이유만으로 논의조차 거부하는 것은 합리적 자세가 아니다. 환자가 존엄성을 유지하며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이제는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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