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칼럼

가 을

20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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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가을이다.


비가 오고 바람 불면 세상이 변화하고 계절이 바뀐다. 심호흡을 깊이 하고 하늘을 보니 제법 높아 보인다. 포도(鋪道) 위에 흩어져 뒹구는 낙엽도 한 폭의 수채화를 뿌려 놓은 듯 아름답다. 가을은 우리네 눈이 머무는 곳마다 고즈넉하게 깊이 묻어있다. 이렇게 가을은 우리 곁에 살짝 내려앉는다.


오동나무는 세월이 흘러야 그윽한 유장(悠長)함의 곡조가 있고, 매화는 추워야 향기가 더욱더 진하다고 하였다. 耳順을 넘으며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일까? 어느 사람의 삶이라도 그러할 것이다.


2020년 한 해는 코로나 펜더믹으로 인하여 보통의 삶이 힘겹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야 살고, 영혼의 교류가 있는 법이다. 서로 교감하며 섭생(攝生)할 때 삶의 활력을 찾는다. 그러나 사면이 둘러싸인 방 안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는 학생을 보고 있노라면 비대면, 비접촉, 시쳇말로 방콕이 양속(良俗)이 된 사회가 된 풍경이 참으로 이상하다. 다만 너무도 아름다운 이 가을, 세월의 수상함을 탓하기보다 인내를 쌓고 내공을 기르는 데에 주목하는 것만이 비정상 속 정상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사랑과 영혼으로 살아간다. 사랑과 영혼은 직선(直線)이기보다 곡선(曲線)이다. 그러나 곡선의 세상 가운데에도 직선과 같은 삶의 지혜가 번득인다. 먹이를 찾을 때는 곡선으로 헤매지만, 발견한 이후에는 직선으로 달려 나가는 개미의 생태계가 그러하다. 우리가 보내고 있는 지금 가을이야말로 그러한 시기이다.


곧 나무의 수액이 마르고 잎이 떨어진다. 나목(裸木) 사이로는 찬 바람만이 앙상한 가지 사이 황량한 공간을 채울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재생(再生)의 싹이 터질 것임을 우리는 안다. 하여 씨가 땅을 만나 싹을 배양하듯, 우리의 삶도 발아(發芽)해 희망의 여신을 만날 것이다.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다.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삶 가운데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아귀다툼하거나 허상을 좇을 것이 아니다. 수천수만의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정치 가운데에서도 우리 후대를 위해 이 가을을 어떻게 영위할지를 고민하여야 하겠다.


의(義)와 불의(不義)를 분간하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낙엽 떨어지는 조락(凋落)의 계절, 붉게 물은 석양의 노을을 보면서 새삼 계절의 깊이를 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