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들녘과 반짝이는 하천, 그리고 풍요로운 서해까지…. 눈을 감으면 아스라이 떠오르는 고향의 풍경은 그리움으로 가슴 속 깊이 각인된 어린 시절의 정경을 떠오르게 합니다. 한 없이 따스했던 어머니의 눈빛과 바다보다 넓었던 아버지의 등, 그리고 순수한 마음 하나로 함께했던 친구들의 소란스러움이 한데 모인 그 시절의 기억은 내일을 꿈꾸는 힘이 됩니다. 정겨운 사람과 아름다운 산천이 가득한 전북의 도민 여러분께, 이렇게 지면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제 고향 전북 고창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어머니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곳곳에 전후의 피폐함이 남아 있었지만 고향은 포근할 따름이었습니다. 모두가 빈한했던 그 시절, 고향은 어머니가 자식을 챙기듯 사람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윤기 가득한 쌀밥 뒤 남은 누룽지로 만들어낸 부드럽고 담백한 숭늉처럼, 고향은 뭍과 바다에서 사람의 삶을 책임지고도, 끝내 마음의 풍족함까지 내어주었습니다. 의정활동에 지치면 이따금 고향으로 달려가 머리를 식히곤 합니다. 고향을 지키는 친구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흔적이 여전히 온 몸을 따듯하게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전라북도를 위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이유입니다.
정치인 안규백의 정체성을 형성한 공간 역시 고향이었습니다. 초대 전라북도 도의원을 지내신 아버지 아래에서 문지방을 무릎으로 넘을 때부터 정치를 배웠고, 사랑방에서 배운 친교활동이 학창시절과 사회생활로 이어졌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정치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라시며, “항상 국민을 섬기는 자세를 잃지 말고, 한국에서 정당정치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중심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유년시절 쌀을 친구들에게 몰래 나누어주다 들킨 저를 인자하게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미소는 제 삶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정치가 삶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당연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정립한 정치의 개념은 바로 ‘사람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고향에서의 경험과 아버지의 가르침, 그리고 정당생활을 통해 정리한 정치철학은 이후 의정활동을 관통하는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고위공직자 자녀의 병역기피 현황을 파헤쳐 성역 없는 병역 문화를 선도하거나, 군사 옴부즈만 제도를 명시한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안」을 제정하고, 국가를 지키다 산화한 제2연평해전 호국영령에 대한 예우를 담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을 끝내 통과시킨 것 등은 모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다 한 결과입니다.
이제는 제20대 국회 하반기 국방위원장으로서 새로운 걸음을 내딛습니다. 경험은 사람을 성장하게 만들고, 시야를 넓어지게 합니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의정활동을 10년 동안 했지만, 상임위원장으로서 바라보는 정치는 또 전과 어떻게 다를지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특히 이번 칼럼 연재를 통해, 전북일보 독자 여러분과 함께 지난 10년의 의정활동을 돌이켜보고, 앞으로의 경험을 기록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데에서 큰 의미를 발견합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히는 법이기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보면 지금의 기억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께서 여의도의 막전막후를 생생히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지면에서 인사드릴 때까지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황금빛 들녘과 반짝이는 하천, 그리고 풍요로운 서해까지…. 눈을 감으면 아스라이 떠오르는 고향의 풍경은 그리움으로 가슴 속 깊이 각인된 어린 시절의 정경을 떠오르게 합니다. 한 없이 따스했던 어머니의 눈빛과 바다보다 넓었던 아버지의 등, 그리고 순수한 마음 하나로 함께했던 친구들의 소란스러움이 한데 모인 그 시절의 기억은 내일을 꿈꾸는 힘이 됩니다. 정겨운 사람과 아름다운 산천이 가득한 전북의 도민 여러분께, 이렇게 지면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제 고향 전북 고창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어머니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곳곳에 전후의 피폐함이 남아 있었지만 고향은 포근할 따름이었습니다. 모두가 빈한했던 그 시절, 고향은 어머니가 자식을 챙기듯 사람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윤기 가득한 쌀밥 뒤 남은 누룽지로 만들어낸 부드럽고 담백한 숭늉처럼, 고향은 뭍과 바다에서 사람의 삶을 책임지고도, 끝내 마음의 풍족함까지 내어주었습니다. 의정활동에 지치면 이따금 고향으로 달려가 머리를 식히곤 합니다. 고향을 지키는 친구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흔적이 여전히 온 몸을 따듯하게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전라북도를 위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이유입니다.
정치인 안규백의 정체성을 형성한 공간 역시 고향이었습니다. 초대 전라북도 도의원을 지내신 아버지 아래에서 문지방을 무릎으로 넘을 때부터 정치를 배웠고, 사랑방에서 배운 친교활동이 학창시절과 사회생활로 이어졌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정치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라시며, “항상 국민을 섬기는 자세를 잃지 말고, 한국에서 정당정치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중심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유년시절 쌀을 친구들에게 몰래 나누어주다 들킨 저를 인자하게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미소는 제 삶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정치가 삶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당연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정립한 정치의 개념은 바로 ‘사람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고향에서의 경험과 아버지의 가르침, 그리고 정당생활을 통해 정리한 정치철학은 이후 의정활동을 관통하는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고위공직자 자녀의 병역기피 현황을 파헤쳐 성역 없는 병역 문화를 선도하거나, 군사 옴부즈만 제도를 명시한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안」을 제정하고, 국가를 지키다 산화한 제2연평해전 호국영령에 대한 예우를 담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을 끝내 통과시킨 것 등은 모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다 한 결과입니다.
이제는 제20대 국회 하반기 국방위원장으로서 새로운 걸음을 내딛습니다. 경험은 사람을 성장하게 만들고, 시야를 넓어지게 합니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의정활동을 10년 동안 했지만, 상임위원장으로서 바라보는 정치는 또 전과 어떻게 다를지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특히 이번 칼럼 연재를 통해, 전북일보 독자 여러분과 함께 지난 10년의 의정활동을 돌이켜보고, 앞으로의 경험을 기록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데에서 큰 의미를 발견합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히는 법이기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보면 지금의 기억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께서 여의도의 막전막후를 생생히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지면에서 인사드릴 때까지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