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칼럼

나무도 보고, 숲도 보자

2021-07-09
조회수 364

나무도 보고, 숲도 보자


우리는 주변의 일상생활로부터 삶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 대해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 최대한 선입관을 배제하고 그 사람에 대한 기록을 해두는 것은 ‘사람이 재산’이고 ‘삶’의 부분이라는 나의 원칙에 가장 충실하고 간단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에 대한 수많은 연구들이 있지만 나는 그중에 『난중일기』를 제일로 뽑고 싶다. 임진왜란 7년 동안 3천여일 가까운 시간 동안 전쟁을 겪으면서 나타나는 삶, 죽음, 희망, 절망 등을 통해 자기를 관리하고 고뇌하는 자세가 위대한 이순신 장군을 만든게 아닌가 싶다.

더욱이 정치를 생각하면서 의도적으로 했겠지만 그렇게 해야만 직성이 풀렸고 그 사람에 대한 애정에 대해 각별히 의미를 부여함과 동시에 차별적 의미를 주기 위해서이다. 이렇듯 나는 메모를 통해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고 늘 중심을 잡고 포괄적인 안목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은 정치를 해오면서도 이어졌다. 되도록 생각의 폭을 넓히고 사고의 유연성을 갖기 위해 참을성을 배웠고 누구보다 크게 보고 대승적으로 판단하면서 세밀하게 상황을 판단하려 노력했다.

이것은 아버지를 통한 정치적 환경에서 체득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망원경을 가지고 전체를 내다보는 능력을 보일 필요가 있고 때로는 현미경을 가지고 세밀하게 관찰할 필요도 있는 법이다. 망원경이 필요한 곳에 현미경을 들이대면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공과는 분명히 존재한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폄훼하면서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모조리 부정하는 것을 우리는 지금도 보고 있다. 정치적 위치가 다르다고 해서 객관적이어야 할 정책의 결정이나 집행에 딴지를 걸고 ‘모 아니면 도’식의 흑백논리를 조장하는 풍토에서 과연 온전한 역사가 후대에 기록되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고 이야기 한다. 이는 부분만 보아서는 안되고 전체모습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 흐름 속에서 부분만 보지 말고 전체를 파악하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그만큼 후회하는 일이 적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다음과 같은 경우도 있음을 잊지 말자. 사람 사는 인생사에 있어서도 너무나 큰일에 매몰되어 세심한 것에 소홀해 대사를 그르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봤다.

가: A정권이 추진하는 B라는 정책은 나빠

나: B라는 정책의 긍정적인 면도 있고 그래서 잘 판단해봐야 해.

그 정책의 득과 실을 잘 봐야 해.

가: 너는 지금 A정권을 옹호하는 거냐?

나: ...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본인이 보고자 하는 ‘썩은 숲’만을 강조한 나머지 살아 숨 쉬는 천연기념물 같은 ‘나무’들을 보지 못하고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나무도 보고 숲도 보되 상호 연관성 속에서 정(正)-반(反)-합(合)의 사고를 갖추려고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에 대한 실수가 없고, 삶의 실패가 적은 것이다. 세상에 쉬운 게 없고 공짜는 더더욱 없다. 조직이 크든 작든 음모와 반대세력은 엄존하기 마련이다.

눈을 크게 뜨고 부분만 보지 말고, 전체적인 연속선상에서 사물을 보았을 때는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리고 어떤 난관 속에서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물을 끓이면 수증기가 되고 수증기가 냉각되어 물방울이 되고, 이것이 모여 구름이 되고, 구름은 다시 눈이나 물로 되어 순환한다. 물과 구름의 연관성을 올바로 파악하지 않고 일부분만 놓고 생각한다면 사물을 올바르게 파악키 어려운 자명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항상 명심하자. 지금 우리가 하는 작은 행동들이 우리 생활의 연관성, 일상 속에서 커다란 그 무언가로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 속에서 느끼는 감상들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음을 말이다.